성적 괴롭힘은 수치감과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성적 언동으로 정의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행위가 남성의 고정된 성적 욕구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 이러한 행동을 이끄는 고정화된 가치관과 관련되어 있다는 지적입니다.
때문에 성적 괴롭힘 문제에 대한 접근은 행위자들의 고정화된 성별 가치관에 대한 이해와 변혁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성추행, 성희롱을 바라보는 관찰자마다 상황을 달리 판단할 수 있어
성희롱,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는 굴욕감과 혐오감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바라보는 관찰자들은 피해자의 감정과 달리, 각자의 안경을 통해 거쳐 나온 각기 다른 상황인식을 느낄 수 있습니다. 수치심과 혐오감은 객관성을 담보하기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성추행은 ‘주관적 목적이나 경향을 불문하고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일체의 행위’(김대군)를 뜻합니다.
법률에서의 성추행은 형법상 강제추행을 말하는 것으로, ‘의사에 반한 또는 강제(폭행 또는 협박)로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느낄 정도로 신체 접촉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추행과 연관되는 개념은 성희롱입니다. 성희롱 자체는 형사 처벌 대상이 아니고 행위자에게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한 행위입니다.
양성평등기본법 제3조 제2호에서 규정하는 성희롱이란 “업무, 고용, 그 밖의 관계에서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공공단체 종사자,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등과 관련하여 성적 언동 또는 성적 요구 등으로 상대방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성추행이든 성희롱이든 행위여부를 판단하는데 있어서의 문제는, 행위의 성립요건의 하나인 ‘성적 굴욕감(수치심), 혐오감’이 객관성보다 피해자의 주관적 감정으로 치부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대법원 역시 성희롱의 전제요건인 성적 언동등을 ‘사회공동체의 건전한 상식과 관행에 비추어 볼 때 객관적으로 상대방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으로 하여금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할 수 있는 행위’로 정의합니다. (대법원 2007.6.14. 선고 2005두6461판결)
하지만 사회 공동체의 건전한 상식과 관행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을 정도를 벗어난 성적인(sexual)언행 여부를 판단하는 객관적인 기준이 무엇인가라는 자연스러운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또한 관찰자들이 성추행 성희롱 사건을 처해 있는 정치적 문화적 시선에 따라 달리 바라보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을 어떻게 특정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도 발생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행위자가 ‘손톱에 장식한 네일아트가 예쁘다며 손을 만지거나 둘이서 셀카를 찍자고 하기도 했다. 셀카를 찍을 때마다 얼굴을 맞대거나 불필요하게 신체를 접촉하기도 했다.’면, 행위자를 옹호하는 이들은 ‘친근감에서 한 행동이지, 그게 어째서 성추행이냐. 피해 호소인이 수치심을 느끼는 건 성격이 예민해서 그런 거다.’라며 반박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피해자에게 고통스러운 성추행 성희롱 사건은, 일부 관찰자에겐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발생한 사소한 갈등 정도로 취급되기도 합니다. (권인숙, 문강분 재인용)
성희롱, 성추행이 성적침해라는 인식에 대한 공감대 형성에 많은 걸림돌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권인숙)
◆피해자 중심주의는 곧 정의
직장 내 성추행과 성희롱 피해자 보호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못하고,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이루어지는 이유도 주관적 감정이 강조되는 성희롱, 성추행의 사실관계가 명확히 규정되기 어렵다는 현실론과 맞물려 있습니다.
때문에 성추행 성희롱사건에 대한 인식은 피해자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원론에 기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관점에 기초하여 아래의 판결을 내렸습니다.
“우리사회의 가해자 중심적인 문화와 인식, 구조등으로 인하여 피해자가 성희롱 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부정적 반응이나 여론, 불이익한 처우 또는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 등에 노출되는 이른바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피해자는 이러한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으로 인하여 피해를 당한 후에도 가해자와 종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도 있고, 피해 사실을 즉시 신고하지 못하다가 다른 피해자등 제3자가 문제를 제기하거나 신고를 권유한 것을 계기로 비로소 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으며,...... 이와 같은 성희롱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대법원 2018.4.12. 선고 2017두74702 판결)
이처럼 대법원은 피해자중심주의를 배격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결국 성적 괴롭힘 언동은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이라는 판례의 관점에 근거하면서, 시간과 맥락에 따른 피해자의 주관적 환경에 따른 관점을 함께 고려하여 판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김민정)
◆성적 괴롭힘의 근원에는 성적 차별, 성적 고정관념이 웅크리고 있어
그런데 성과 관련된 괴롭힘이 성적인 언행이 전제될 때만 성립되는가라는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이는 성적 괴롭힘에 내재되어 있는 행위자의 인식에는 성적 차별이라는 가치관이 잠재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성희롱에 해당되는 ‘성적언동’은 「남녀고용평등법 시행규칙」 별표 1에 예시로 규정되어 있는데, 크게 △육체적 행위(입맞춤, 포옹등의 신체적 접촉행위, 안마나 애무를 강요하는 행위) △언어적 성적언동(음란한 농담) △시각적 행위(음란한 사진 등을 보여주는 행위-컴퓨터 통신 이용하는 경우도 포함)로 구분됩니다.
이러한 괴롭힘 언동들의 근원에는 성적 차별, 성적 고정관념이 웅크리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행위는 가치관에 의해 결정되는 경향이 높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적 괴롭힘은 성적 차별과 고정관념이라는 가치관의 타파에 의해 근본적으로 해소될 수 있습니다.
◆젠더기반(gender based) 괴롭힘
이러한 성희롱등 성적 괴롭힘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 속에 태생 된다는 인식은 ‘젠더기반(gender based) 괴롭힘’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젠더기반 괴롭힘이란 특정 성에 기반을 둔 차별적 언행으로, ‘성별 고정관념을 전달하는 언어적 신체적 상징적 언동’을 뜻합니다.
여기서 성별은 생물학적 성별(sex) 뿐만 아니라 사회적 성별(gender)을 포함합니다. (문강분)
상식적인 젠더차별 개념은 보부아르에 빚집니다.
보부아르는 「제2의성」에서,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되어간다.’고 강조합니다.
즉 그는 여성됨을 임신과 출산이라는 생물학적 조건보다 역사적 문화적으로 형성된 사회적 산물로 이해합니다. 때문에 생물학적 성별인 sex가 아닌 사회적 성별인 gender가 남성과 여성의 속성을 설명하는 적절한 용어가 됩니다.
젠더의 관점에서, 보부아르는 남성을 표준과 가치를 정하는 주체인 ‘제1의 성’으로, 여성을 지배능력이 부족한 타자(other)인 ‘제2의 성’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사르트르의 용어를 빌려온다면, 남성은 ‘능동적· 이성적· 의지적· 자율적 존재’인 대자적 존재, 여성은 ‘수동적· 직관적· 감성적· 관계 지향적 존재’인 즉자적 존재로 평가됩니다.
여기서 대자적 존재는 자유하는 인간, 초월하는 인간인데 반해, 즉자적 존재는 아무런 실재적인 활동도 할 수 없는 단지 ‘있다’는 데만 의미를 두는 인간입니다.
그렇다보니 여성은 자율적 독립성을 지닌 자아로 존재하지 못하고, 남성의,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하여 존재하는 대상으로 취급됩니다.
남성을 위해 단지 ‘있는’ 여성은 자기결정권을 상실한 채 남성의 요구대로 남성을 慰安(위안)하는 존재, 자신의 사진을 휴대폰으로 일방적으로 전송하며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남성으로부터 고통 받아야 하는 존재, 그렇다고 2차 피해에 대한 우려로 성희롱이라고 저항할 수 없는 존재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한 남성에 비해 사회적 지성적으로 열등하여 ‘커피나 타는 존재’인 여성은 임용권자가 운동을 마친 뒤 속옷을 가져다주어야 하는 존재로, ‘자기가 재면 내가 혈압이 높게 나와서 기록에 안 좋아’ 라는 성적 칭찬을 들어야 하는 존재로 격하되게 됩니다.
이들의 삶은 자기결정권을 빼앗긴 채 강요에 의해 일본군의 성노예로 존재하였던 조선 일본군 위안부들의 그것과 실질적으로 다를 바 없습니다.
결국 즉자적 존재로서의 여성은 자기결정권을 상실한 채, 왜곡된 성역할을 담당하는 사람 아닌 사람으로 고착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젠더에 기반을 둔 성 고정관념의 극복이 곧 성희롱(sexual harassment)문제 해결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 인권법제가 필요한 이유
젠더기반 괴롭힘은 제2의 성으로 간주되는 여성이 제1의 성인 남성과 동등한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해소될 수 있습니다. 즉 남성과 여성이 각각 행위자와 반응자라는 뒤틀린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여, 상호의존하고 포용할 때 완화될 수 있습니다.
달리말해 성 고정관념에 근거한 상호간의 역할 경계를 무너뜨리고 능력에 따라 역할을 담당하여, 일터 뿐만 아니라 학교등 일터외의 장소에서 상호존중이 살아 숨 쉴 때 젠더 괴롭힘은 극복될 수 있습니다.
기존의 성희롱 관련 법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뛰어넘는 인권법제 도입이 요구되는 이유입니다.
인권법제는 성희롱, 성추행, 직장 내 괴롭힘을 차별로 보며, 차별을 실질적으로 구제할 수 있도록 법제화하는 것입니다.(이수연)
우선 누구나 차별 없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고 하에, 피해자 관점에서 피해자를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에 초점을 둡니다.
이를 위해, 인권법엔 신속하고 전문성 있는 구제기관의 설치가 포함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노동위원회에 설립되는 전문위원회가 사용자· 임용권자의 직장 괴롭힘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현재 직장 괴롭힘의 신고 수리주체가 사용자로 되어 있는데. 사용자가 가해자인 경우 제대로 피해를 신고하고 처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노동위원회를 신고 수리주체로 규정하는 법률은 피해자 보호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또한 인권법은 종속 근로 외의 노무 종사자를 괴롭힘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습니다.
현행 직장 괴롭힘 법제는 근로기준법상 종속근로자에 속한 규정입니다. 따라서 직접 고용관계가 없는 하도급 근로자,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는 특수형태 근로자와 5인 미만 사업자의 근로자, 자영업적 고용형태에 종사하는 근로자등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권법은 이들을 포괄하여 괴롭힘에서 보호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인권법은 고용부문 뿐만 아니라 비고용부문으로까지 보호 범위를 확대 할 수 있습니다. (이수연)
이를 테면 학교등에서 발생하는 성적 괴롭힘에 대해선 국가인권위원회를 신고수리주체로 규정하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인권법은, 인격권의 침해를 방지하는 관점에 서서, 직장과 직장외의 장소에서 성적 차별에 따른 괴롭힘을 방지하거나 사후 조치하는 관련 내용을 담는 그릇이 될 것입니다.
◆이브의 원죄가 씻기는 세상을 꿈꾸며
보부아르에 따르면 젠더는 사회화된 개념입니다. 그렇다면 ‘여자답다’라는 굴절되어 의식화된 관념이 새로운 물결로 전환될 때 사회화가 다시 태동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물결은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존중받아 기존의 역할 경계 짓기를 극복하고, 모두가 주체로서의 소명을 담당하는, 차별 없는 세상을 짓고자 하는 변혁을 말합니다.
이러한 물결이 넘쳐흐르는 세상은 남성과 여성 모두의 자기결정권이 병존하는 곳입니다. 그리하여 모두가 상대를 포용하고 상호 의존하는 곳입니다.
궁극적으로 이브의 원죄가 씻기는 곳, 즉 동등한 존엄과 자존감이 살아 숨 쉬는 땅의 개척은 구별 짓기의 땅에 태어난 우리 모두의 소명이 될 것입니다.
<참고문헌>
김민정(2019), “직장 내 괴롭힘의 법적 개념과 성립요건: 직장 내 성희롱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이수연(2019),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법적 쟁점 분석을 통한 대응방안 모색”
문강분(2020), “직장 내 괴롭힘 법제화와 여성운동”
김대군(2015), “윤리교육에서 성희롱 예방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