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론이 한번은 배를 타고 여행을 했다. 배가 바다 한가운데서 큰 폭풍우를 만나자 사람들은 우왕좌왕, 배 안은 곧 수라장이 됐다. 울부짖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뗏목을 엮는 사람.....필론은 賢者(현자)인 자기가 거기서 해야 할 일을 생각해 보았다. 도무지 마땅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 배 선창에는 돼지 한 마리가 사람들의 소동에는 아랑곳없이 편안하게 잠자고 있었다. 결국 필론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돼지의 흉내를 내는 것 뿐이었다.”(이문열 <필론의 돼지>) 돼지의 관심은 잠자고 여물 먹는 데에 있을 뿐입니다. 필론도 그렇습니다. 폭풍우로 배가 뒤집어 지든 말든, 다른 여행자들이 죽든 말든, 그는 외적인 것에 무관심한 방관자입니다. 필론이 이와 같은 행동을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현자 필론은 상황을 차가운 이성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상황에 개입해보았자 현실은 바뀔 게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부조리를 비판한다고 해서 세상이 고쳐질 수 있겠는가라는 회의를 품었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필론의 방관자적 행동은 공감의 부족에서 비롯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가치로 우정, 사랑, 동료의식등이
일본정부와 우익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부정하는 논리의 하나로 매춘패러다임을 내걸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들은 해외에서 일하는 창기인 ‘가라유키상’의 일종으로, 자유의사에 따라 돈벌이를 하는 자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일본군 위안부들은 성노예가 아니라는 것이다. 2007년 6월 14일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더 팩츠’라는 제목의 글에 이러한 주장이 펼쳐진다. “일본군에 편입된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다. 세계적으로 인가를 받은 흔하디 흔한 공창제도에서 일하던 여성들이었다. 위안부 대부분을 영관급 장교보다 훨씬 수입이 많았으며 위안부의 대우는 양호했다는 증언도 많다.” 정말 그럴까? ◆ 성노예란? 성노예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 노예는 상품과 다름없다. 다른 사람의 소유물로서, 소유자의 통제에 놓이게 되된다. 그러므로 노예의 노동과 행동은 자유의사와는 무관하게 소유자의 강압에 의해 결정된다. 대표적인 노예의 예가 상품노예이다. 1787년 노예를 실은 배가 항로를 이탈하여 선박의 물이 부족하게 되자, 선주는 노예들을 바다에 던져버린다. 이후 선주는 노예를 잃은 것에 대해 보험금을 청구한다. 즉 노예는 화물에 해당한다는 것이다.(오승진) 최근 노예의 정
You looks are laughable, un-photographable Yet, you’re my favorite work of art. 당신의 모습은 별 볼 일 없고, 사진에 멋지게 나오지 않지만 당신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예술 작품이지요 Stay little valentine, stay! Each day is Valentine’s Day. 내 곁에 있어줘요, 작은 발렌타인 매일매일이 발렌타인 데이지요 https://youtu.be/jvXywhJpOKs 사랑에 빠지면 이런 감정일까요? 당신이 비록 그리스 조각 같은 용모는 아닐지라도, 헤어스타일은 바꾸지 말라고 애원합니다. 지금 그대로의 당신이 바로 미술 작품이라고 매일 매일 고백합니다. ‘My funny valentine’은 중의적인 느낌을 줍니다. 곡의 가사는 열정적인 사랑을 노래하는데, 리듬과 선율은 느리고 우울한 단조음계입니다. 심지어 곧 헤어질 것 같은 슬픈 감정을 들게 합니다. 그래서인지 계속 만나겠다는 건지, 사랑하지만 무슨 사연이 있어떠난다는 건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 이 곡은 1937년 초연된 뮤지컬 ‘Babes in Arms’에 나오는 노래로, 영화화된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을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했을 때, 승패는 뻔한 듯이 보였다. 나폴레옹은 계속해서 러시아 안으로 밀고 들어갔고 어렵지 않게 모스크바를 점령하였다. 하지만 침략군을 맞이한 것은 불에 탄 도시였다. 러시아인들은 도시에 불을 지르고 떠난 것이다. 나폴레옹은 불에 탄 도시와 혹독한 겨울로 퇴각 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러시아 군대는 퇴각하는 나폴레옹 군대를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전쟁의 승리는 결국 나폴레옹을 상대한 노련한 적장, 미하일 쿠투조프에게 돌아갔다. 쿠투조프의 勝因(승인)은 나폴레옹에겐 찾을 수 없었던 융통성 있는 전술이었다. 나폴레옹은 상황을 무시하고 통념에 근거한 고정적인 전술을 사용하였다. 그는 상대편의 움직임에 신경 쓰지 않았고, 오로지 프랑스군의 신속한 진군과 모스크바 점령만 생각했다. 반면 쿠투조프는 나폴레옹의 진군 상황에 맞춰 전략을 세웠다. 시기적으로 겨울이고 병참선에서 멀리 떨어진 상황에서 나폴레옹의 침공은 패배로 끝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이에 따라 그는 군을 일시 퇴각 시킨 후, 공격의 기회를 노린 것이다. 이처럼 쿠투조프는 상황에 맞는 관점과 전술을 구사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 손자병법 : 장수는 주어진
# 스티브 잡스는 1986년 루카스 필름으로부터 500만 달러에 픽사를 사들였다. 당시 픽사는 실패한 사람들의 집합소였고 뚜렷한 비전조차 없었다. 그런데 잡스는 2006년 75억 달러를 받고 디즈니에 되팔았다. 회사가치를 20년 간 1500배나 성장시킨 비결은 무엇일까? 픽사가 성공에 이른 비결은 천재들의 영감이 아니라, 보통사람들의 대화와 노력이었다. 예를 들어 픽사는 세계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를 만들면서 스토리에 가장 많은 신경을 집중하였다. 감동적인 이야기는 사내 감독들과 스토리 작가들이 모인 ‘브레인 트러스트’를 거쳐 나왔다. 토이스토리 감독과 제작자는 자주 트러스트를 소집해 지금까지 작업한 버전을 보여주고, 트러스트는 토론을 벌였다.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동안 스토리의 미흡한 부분들이해결 되어갔다. (삼성경제) 픽사가 제작한 애니메이션을 보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 그러면서 탁월한 상상력의 원천이 궁금해진다. 위의 사례는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픽사 창작력의 핵심은 공동창작인데, 천재적인 개인이 아니라 대중지성에 기반한 집단 지성을 픽사 성공의 요인으로 꼽고 있다. ◆집단지성의 힘의 원천은? 대중의 집단지성(Collective
추석은 전통적으로 수확에 대한 감사의 의미를 담고 있다. 농경민족의 최대의 소원은 풍년이 들어 많은 추수를 거두는 일이고, 추석은 풍요로운 수확에 대한 감사를 드리는 명절이다. 추수감사는 이웃에 대한 나눔으로 이어졌다. 옛날에는 추석등 명절 때마다 이웃에 음식을 나누는 ‘반기’가 있었다. 이는 사방 한 뼘 크기의 반기(飯器)목판에 송편, 과일을 담아 이웃에 고루 나누어 주는 아름다운 풍습이었다. 그래서 반기타령도 있다. 내떡 네떡 우리 떡 / 송편에다 호박떡 반기 반기 나눠서 /이웃 간에 먹자 이처럼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은 춥지도 덥지도 않은 추석에 모든 것이 풍요로워 넉넉한 나눔과 배려의 정이 있다는 의미였다. ◆최소 수혜자의 이익이 되도륵 결정 되어야 전통적으로 내려온 한가위의 의미는 추수감사와 반기로 대표되는 배려에 있었다. 하지만 요즘 반기라는 용어 자체가 낯설 정도로, 나눔과 배려는 생경한 느낌마저 든다. 특히 권리와 권리가 서로 충돌 할 때, 배려윤리는 무시된다. 권리간의 다툼이 발생할 때, 정의가 등장한다. 정의의 원칙에 따라 다툼을 해결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어떠한 선택을 할까? 예를 들어 대립되는 다툼만이 있고, 다툼의
미국의 통치시스템은 신속하게 정치적 의사결정을 내리기 힘든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먼저 대통령과 의회라는 각각의 기관이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어 대통령과 의회간의 의견 대립이 번번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정치적 교착상태를 초래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중도파의원의 감소에 있습니다. 미국의 의회는 당파의 결속이 강한 정당제도를 특징으로 합니다. 민주당의원은 보다 진보적으로, 공화당의원은 보수적으로 양극단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양당 간의 협의가 용이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중도파의원이 어느 정도 존재하면 이러한 정치적 양극화는 완화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당파와 이데올로기와의 관계가 약했던 시대에는 분점정부 하에서도 양당의 협력을 통한 합의가 원만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의 정치 교착 현상 이처럼 정치적 양극화는 정치적 의사결정에 상당한 시간을 요구하고, 협력과 타협이 어려운 정치적 교착상태를 초래합니다. 미국의 이런 사례는 우리나라의 정치토양에도 적용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회 구도는 미국과 달리 다당제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런 다당제는 정치적 교착상태를 해소하는 유용한 기제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
더위를 잊는 데는 물놀이만한 것이 없다. 계곡과 바다뿐만 아니라, 집 근처 물놀이장도 가족의 물놀이 나들이에 부족함이 없다. 경기도 성남시가 운영하는 탄천 물놀이장도 여름 한 때를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다. 지난 10일 개장한 탄천 물놀이장은 누구나 입장료 없이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물놀이장 언저리에 개인 텐트를 세우고 수박과 참외를 나누어 먹는 정이 그만이다. 그런데 공공 물놀이장은 원하는 이용자를 모두 수용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이용자들의 수가 증가하는 초등학생들의 방학 기간등에 물놀이장의 혼잡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하철 분당선 정자역 근처에 위치한 정자물놀이장의 안전 관리인은 이에 대해 “물놀이장은 충분한 수용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탄천 물놀이장은 정자 물놀이장 뿐만 아니라 야탑 맴돌 태평 구미에도 설치되어 있어, 이용자들이 곳곳으로 분산된다.”며 수요량의 소화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탄천 물놀이장엔 성남시의 적절한 시설의 설치 관리로 인해 공공재의 혼잡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 ◆혼잡가능공공재 vs 순수공공재 공공재의 혼잡문제는 혼잡가능공공재(congestible public goods)로 설명할 수 있
부산 아미동 산 19번지의 일본인 공동묘지가 사람이 사는 정착지로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사연은 먼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는 일본인들의 조선인 추방과 관련되어 있다. 부산부는 1937년 간선도로와 광장의 건설을 위해 매축지나 도로변에 있는 조선인들을 곡정(아미동)등 산속으로 추방하였다. 또 부산의 많은 토지를 소유한 일본인들은 차지료를 인상하여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조선인들을 산속으로 내몰았다. 이렇게 정치권력과 경제 권력을 장악한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을 평지에서 아미동등 산속으로 쫒아낸 것이다. (차철욱) 6.25전쟁 이후 아미동은 1950년대 이후로 인구 증가를 맞게 되는데, 이는 휴전이후 시내 판잣집들의 철거와 관련 깊다. 철거민들이 아미동등으로 이주해 온 것이다. 정부와 부산시는 도시미관, 위생문제, 교통난을 이유로 들어 판잣집을 철거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피난민들은 밤에 집을 다시 세워 부산시의 행정력에 도전하였다. 한 증언에 의하면, 이승만 관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보수동 산동네에 판잣집이 세워지는 것을 싫어한 이승만대통령이 판잣집 건축을 제지하도록 지시하였지만, 피난민들은 밤에 외관을 만들고 낮에 내부공사를 하여 판잣집을 지었
부산광역시 서구 아미동 산 19번지. 부산대학병원 앞에서 출발하여 가파른 감천고갯길을 올라가면 상산교회를 만나게 된다. 교회를 시작으로 한 일대는 아미동 산의 19번지라 불린다. 아미동(峨眉동)의 지명은 애막(움집)이라는 옛말이 변하여 아미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 옛 지명인 아미골(蛾眉)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아미동에 반달형의 土城이 있었는데, 이 토성이 미인의 눈썹을 뜻하는 蛾眉(누에나방의 더듬이 같은 눈썹)를 닮았다는 것이다. ◆ ‘다니마치’ 주민들의 근성 : 맞아도 ‘다니마치’ 아미동은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행정구역 조정으로 곡정(谷町 다니마치)으로 개편되었다. 골짜기를 뜻하는 谷은 ‘골로 간다’는 말처럼 죽음을 의미하는데, 곡정에는 화장장과 일본인 공동묘지가 있었다. 일본순사들은 다니마치 주민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유승훈) 순사들은 길가는 아이들에게 ‘어디고’라고 묻고, 다니마찌라 답하는 아이들을 무조건 때렸다고 한다. 다니마치 주민들을 다른 동네에 비해 일본순사에 거칠게 저항하는, 골치 아픈 존재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미동 사람들의 고집은 남달랐다. 순사가 다음에 ‘어디고’라고 다시 물으면, 아미동 아이들은 또 ‘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