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코로나 방역의 실패와 흑인들의 격렬한 시위로 혼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사회는 갈등과 반목의 사회로 쪼개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코로나 19 사망과 미국 공공의료보험의 부재 지난 31일 기준으로 미국의 코로나 19 사망자는 10만6000여명을 기록하였습니다. 미국이 이처럼 다수의 사망자를 낳은 것은 전국민 공공의료보험을 갖추고 있지 않아, 흑인과 유색인종등 취약계층에 속한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호흡곤란이나 발열증상이 있다면 즉각 병원치료를 받아야 하는데도, 흑인이나 유색인종들은 의료보험이 없다는 이유로 병원 치료를 거부당하여 코로나19로 사망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 미국 공공의료보험제도의 부재와 소극적 자유주의 미국의 공공의료보험제도의 불비는 미국사회의 주류가 행복을 바라보는 관점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미국주류 사회는 행복을 로크식 자유주의, 즉 방해를 제거하는 관점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극적 자유주의는 미국의 제도가 공공적 지향성을 심각하게 퇴화시키는 배경이 됩니다. (이재승) 실제로 연방헌법은 행복추구권을 수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독립선언에 포함되어 있던 행복추구권이 헌법에 배제되어, 인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집단면역을 ‘실험’하고 있는 스웨덴당국을 향해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집단면역의 성공기준은 50~70%의 항체생성입니다. 그런데 스웨덴에선 3500명이상이 희생하여 항체를 가진 인구가 약25%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연대와 공동체주의에 근거하여 사민주의정신을 추종하는 스웨덴 당국이 오히려 공리주의자의 일면을 드러내고 있는 실정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스웨덴당국을 집단면역 실험으로 몰고 갔을까요? 이는 스웨덴의 보편주의 복지정책과 무관하지 하지 않습니다. ◆ 스웨덴의 가치들의 결합 : 집단가치+ 개인가치, 사민주의+ 신자유주의 스웨덴이 코로나19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처한 것은 보편주의 복지정책을 지속시키기 위한 조건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보편적 의료는 소비의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을 특징으로 하는 공공재입니다. 누구나 공동으로 소비할 수 있도록 하고, 누구도 서비스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합니다. 때문에 모든 국민이 소득·자산의 크기와 무관하게 고부담의 수술을 거의무상으로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의료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재정으로 운영되는 의료공급은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합니다. 때문에 스웨덴의 의료체계는 세금으로
이번 4.15총선 특징의 하나로 정치 주류의 교체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는 국정의 주요 의사결정의 표준이 과거 보수우파의 그것에서 진보좌파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일부 언론들은 이에 대한 근거를 더불어 민주당이 최근 전국단위 선거에서 4번 연속 승리(2016년 20대 총선, 2017년 19대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 하였다는데서 찾습니다. 특히 주류교체의 요소로 세대효과를 강조합니다. 인구 구성의 변화가 주류교체의 단단한 지반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럴듯해 보이는 이 주장, 과연 이론으로 수용 가능할까요? ◆ 무엇이 추세변화를 가져오나? 정치주류의 교체는 이념의 추세가 변화되었다는 뜻입니다. 추세는 스스로 변하지 않는다는 지적처럼, 시간이 흐른다고 이념의 경향성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같은 경향성의 변화는 어떻게 일어날까요? 이에 대한 세 가지 가능성이 고려되고 있습니다. (허석재) 우선 구성원이 바뀔 때 추세가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세대효과 또는 출생시기를 공유하는 코호트효과입니다. 과거 청년들은 장년이 되듯이 사회 구성원은 순환과정을 거치는데, 이러한 세대교체로 인해 이념의 추세가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베버(Max Weber)는 그의 저서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비교합니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신념과 행위의 일관성만을 강조하는 신념 근본주의에 빠져, 행위와 결과의 일치를 주장하는 책임윤리를 배격하고 있지 않은지 우려스럽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신념윤리 현실 초월적이고 근본적인 이념과 행위를 일치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존경받을 만한 행위입니다. 루터의 신념에 찬 행위는, 베버의 언급처럼,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입니다. 루터는 교황청이 판매하는 면죄부가 구원에 대한 성경적 원리(칭의,稱義)에서 벗어난 것이며, 독일시민에 대한 착취라는 믿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1521년, 면죄부를 판매하는 로마교황 레오 10세는 당시 독일의 통치자 찰스5세에게 루터의 복종 또는 사형을 부탁합니다. 찰스 5세는 루터에게 자신의 신념을 굽힐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하지만 루터는 자신의 신념이 성서와 양심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에 그 요구에 굴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단호히 밝혔습니다. 이후 그는 친구 프레더릭의 보호를 받으며 라틴어로 쓰인 신약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여, 성직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성경을 라틴어를 모르는 평민들에게 전파하였다. 이처럼
패스트트랙으로 올라간 법안 중 검경수사권조정에 대한 여야의 견해 차이는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사법개혁을 둘러싼 논쟁은 준사법기관으로 검찰에 한정할 것인가, 아니면 검찰외의 기관, 예컨대 공소권을 갖춘 공수처를 추가로 허용할 것인가로 좁혀지고 있습니다. 즉 한편에선 세계 어디에도 공소권을 가진 공수처 같은 준사법기관은 없다라는 주장에 대해, 또 다른 쪽에선 세계에 유례가 없는 입법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할 정도로 무소불위의 검찰이 사회문제의 최종심판자로 나서고 있다라고 맞서고 있습니다. ◆ 기소권을 보유한 공수처를 지지하는 논거 기소권을 보유한 공수처의 필요성에 대한 논거는, 로마법언 또는 common law의 언급처럼, 일반적으로 자기 정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수사권 및 기소권이 있는 기관이 검찰을 통제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심판자이면서 당사자로서 활동할 수 없으므로, 사람은 자신의 사건에 대한 심판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로마법언) “이해관계의 충돌이 있는 경우에 자기 사건을 자신이 조사 할 수 없다.”(미국 common law)] 즉 자기편 사건을 자기기관이 제대로 수사, 기소 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
1990년대 이후 부상한 라틴아메리카의 좌파정부들이 우파 정당들에게 정권을 빼앗기며 퇴조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브라질에선 현재 극우 성향 정당인 사회자유당의 자이르 메시아스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정권을 맡고 있습니다. 보우소나루대통령은 '브라질의 도널드 트럼프', '열대의 도널드 트럼프'라고 불릴 정도로 극우 정치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칠레에선 현재 좌파 성향의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을 이어 중도 우파성향의 세바스티안 피녜라가 대통령입니다. 그는 억만장자로 ‘칠레의 트럼프’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라틴아메리카의 다수의 유권자들이 좌파 정부와 결별하고 우파 정당을 지지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라틴 아메리카 좌파 정부의 퇴보, 그 원인은? (이상현외) 우선 유권자들의 좌파정부에 대한 반감은 좌파정부의 평등 지향적 정책과는 무관하다는 지적입니다. 과거 좌파정부의 부상은 극심한 빈부격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를 극복해 달라는 국민들의 요구가 좌파정부의 정권획득으로 이어졌고, 좌파정부는 극빈층의 지원정책〔브라질 룰라정부의 볼사 파밀리아(Bolsa Familia), 베네수엘라의 미션(Misión), 아르헨티나의 헤페스 이 헤파스 데 오가르(Jefes y Jefa
사회전체의 행복을 위해 개인과 소수자의 이익과 권리는 침해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 논리에 따르면, 정의도 목적이 아닌 사회적 행복을 높이는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논리는 결과주의와 전체주의에 빠진다는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때문에 롤즈(J. Rawls)는 다수자의 기본적 자유의 확보를 위해, 개인 특히 소수자의 기본적 자유를 희생하는 것은 정당화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 이와 같은 결과주의와 전체주의를 야기하는 사상은 존 스튜어트 밀(J.S. Mill)의 정의관으로부터 비롯됩니다. ◆ 밀의 정의관 어떤 지역의 국회의원이 일부 유권자들에게 돈을 주고 당선되었습니다. 그 지역외의 전체 유권자들은 그 국회의원에 불만을 가지게 됩니다. 그 의원은 자신의 공적(功績)으로 당선 된 것이 아니며, 무엇보다 정당하게 선거운동을 한 다른 후보들의 이익을 빼앗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유권자들의 불만을 없애기 위한 방법은 그 의원이 처벌을 받는 것입니다. 밀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되는 행동은 처벌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언제나 기쁨과 만족을 안겨준다.”라고 지적합니다. 이처럼 정의에는 공적에 따른 분배, 위반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사회적 약자에게 꿈같은 소리입니다. 부모의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예컨대 부모의 학력, 부모의 인맥, 입시에 대한 정보력)이 자녀의 고상한 취향과 스펙이라는 아비투스, 즉 문화자본을 축적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부모의 힘에 의해 만들어진 자녀의 문화자본이 명문 대학입학이란 문화자본을 낳습니다. 이는 다시 신분상승이란 문화자본과 고소득의 경제자본으로 이어집니다. 이러니, ‘개천에서 용 난다’는 것은 이제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 학종의 성격 부모의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이 빛을 발하는 분야가 대학입시 전형의 하나인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입니다. 학종이 활성화 된 때는 MB정부 시절입니다. 학종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입학사정관제는 이명박정부 시절 학생 부담과 사교육비 경감이라는 정부 방침 아래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강력한 의지 속에서 추진되었습니다. 2014년부터는 교육부의 ‘고교교육 정상화 기여대학 지원 사업’과 맞물려 학생부종합전형을 통한 학생 모집 비율은 더욱 확대되었습니다. 학생부종합전형은 성적을 우선으로 선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꿈과 재능을 가진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는 입시 제도로써 기대를 모았습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서부 전선의 여러 곳에서, 적군끼리 공격을 자제하는 모습이 역력하였습니다. 심지어 독일군들이 영국군의 소총 사정거리 내에서 태연하게 걸어 다녔고, 영국군들은 그것을 보고도 신경을 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전선에서 어떻게 적군끼리 ‘공존공영’이 가능 했을까요? ◆협력의 조건은 배반에 대한 즉각적인 응징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액설로드는 그 이유를 상호작용의 계속성에서 찾습니다. 당시 공존이 가능했던 전선은 참호전에서 서로 오랜 기간 대치하고 있던 영토들이었습니다. 참호전의 소부대 병력은 상당한 기간 동안 어쩔 수 없이 얼굴을 맞대고 상호작용을 해야 했습니다. 이들은 서로의 관계가 오래 지속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상호작용의 지속은 협력에는 협력으로, 배반에는 배반으로 갚는 신사적인 호혜주의(눈에는 눈, 이에는 이 :Tit for Tat)가 유지된다는 뜻입니다. 만약 상호작용이 곧 끝날 것 같다면 협력 대신 배반이 정답입니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둘 다 배반하면 둘 다 1의 수익을 얻습니다. 또한 내가 배반하고 상대가 협력하면 자신은 5의 수익을, 상대는 0의 수익을 얻습니다. 때문에 나는 어떤 경우에든 배반의
일본의 아베 신조 수상의 롤 모델은 그의 외조부인 총리를 역임한 기시 노부스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아베수상은 기시와 구별되는 차별적인 정치 지향성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기시는 ‘가시적인 가치’를 추구한 반면, 아베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를 추구한다는 겁니다. 가시적인 가치를 추구한 기시는 ‘생활보수주의’라는 비판을 받을 만큼, 생활의 가치에 정책의 방점을 찍었습니다. 그는 우파가 요구하는 헌법 개정에도, 좌파가 요구하는 안보조약 체결 거부에도 동의하지 않고, 소득증대·사회보장등을 통한 국민의 풍요로운 삶의 확립에 주력하였습니다. 기시는 안보투쟁의 상황에서 “야구장은 만원사례 아닌가”라며 가시적 가치를 소중히 한 정치인이었습니다. (남상욱) 반면 아베수상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 즉 애국심등을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인다는 지적입니다. 그는 애국심의 사례로 2006년 WBC에 참여해 일본을 우승으로 이끈 메이저 리거 이치로를 언급합니다. 이치로는 “고액의 연봉보다 세계1위를 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멋진 일”이라고 말했는데, 아베수상은 이를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 즉 美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아베수상은 기시의 기술적 생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