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릴 때, 기술을 먼저 배워야 할까? 그릴 대상을 먼저 찾아야 할까?마찬가지로 사랑을 할 때, 사랑하는 사람을 우선 골라야 할까? 사랑에 대한 태도를 익히는 것이 우선일까? 그림(사랑)의 기술을 습득하지 못한 채, 대상만을 구하게 된다면, 그 사랑은 결국 실패로 끝날 위험이 있다고 에리히 프롬은 말한다.이러한 질문은 사랑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성격과 사랑에 대한 태도라는 지적과 이어진다. 두 가지 대안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결정에서, 그 판단 기준에 영향을 미치는 힘은 무엇일까? 이를테면 젊은 여자로 하여금 돈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중년 남자와 미래의 잠재력만을 지니고 있는 젊은 청년 중 한 사람을 선택하도록 할 때, 어떠한 힘이 젊은 여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까? 판단은 실제로 성격의 결과라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지적이다. 논리적 치밀한 추론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들의 태도가 판단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우디 앨런의 카페 소사이어티는 한 여자에 두 남자가 얽히는 관계를 통해 이러한 선택의 문제를 관객에게 질문한다.영화엔 스토리를 이끄는 세 남녀가 등장한다. 1930년 대, 할리우드에서 성공을 꿈꾸는 뉴욕출신 청년 남자 바비(제시
한 남자가 거리에서 팻말을 들고 있습니다. 팻말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I Hug You for nothing,” 공짜로 안아준다고? 저 남자는 왜 안아 준다는 거지?우리는 친한 친구끼리 통화를 할 때, 보통 첫 마디가 “어디야?”입니다. “안녕한가”라는 물음 대신 ‘지금 네가 있는 곳이 어디냐’며 친구의 소재를 탐문합니다. 이렇게 장소를 추궁당하면, 친한 친구 사이일지라도 ‘내가 어디에 있든 네가 뭔 상관이야’라고 불쾌감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하지만 정신분석학자들은 이 질문은 종로, 잠실등 구체적인 공간적 장소를 묻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장소에 대한 관심이라고 합니다. 어떠한 심리적 현실에 살고 있느냐는 다소 철학적인 안부 인사라는 겁니다. 당신이 우울, 초조, 열등감, 분노등 심리적 불안에 놓여 있는지, 아니면 위로 평화, 행복등 안정된 공간에 위치에 있는가라는 심리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라는 것입니다.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윌의 반사회적 경향과 부모의 학대영화의 주인공, 갓 20살의 윌 헌팅턴은 가슴에 불을 묻어 놓고 있습니다. 윌은 부모에 버림받고, 양부에게 걸핏하면 폭행을 당했습니다. 양부는 ‘늘 탁자에 렌치와 막대기와 혁대를 늘어놓
좋은 스토리텔링은 상투성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다. 관행의 추종대신 새로운 발명품을 고안해 낼 때, 관객과 스토리는 연대를 형성하게 된다. 예를 들어, 영화사에 빛나는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vertigo)은 중층적인 장르의 변주로 관객들을 스토리에 감정을 싣게 한다. 스릴러물로 시작된 영화는 러닝 타임의 3/4이 흐른 시점에서 스릴러 내러티브에 결말을 맺고, 이어 서스펜스가 가미된 드라마로 장르의 변화를 꾀한다. 이러한 장르의 비틀기는 기대와 두려움의 팽팽한 줄다리기 속에서 관객을 스토리 안으로 몰아넣는다.영화 터널도 단선적인 서사를 거부하고 상투성과의 전쟁을 치열히 치른다. 재난영화의 문법, 즉 영웅이 등장하여 장애를 뚫고 대중을 구한다는 화석화된 서사에 완강히 저항한다.집으로 가는 길에, 정수(하정우)는 완공된 지 며칠 안 된 터널의 붕괴로 매몰된다. 그는 휴대폰, 생수 두병, 딸에게 줄 생일 케이크로 구조를 기다려야한다.하지만 정수의 구조는 터널 부실공사의 탓으로 기약 없이 늦추어진다. 그 와중에 구조본부대장 경대(오달수)와 정수의 아내 세현(배두나)에 여론은 등을 돌리기 시작한다.터널의 장르의 변주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의
“환한 빛은 보이는데 제가 눈을 떴을 땐초인종 소리와 함께 작은 상자 안이었어요.여기저기 친구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을 땐이미 제 옆엔 엄마와 아빠도 가족이라고는보이지 않고 안쓰러운 눈으로바라보는 시선들뿐 (중략)저와 같은 천사들을 울리지 말아 주세요겁도 많고 보호받아야 할 천사들에게다시는 혼자라는 두려움을주지 말아주세요 “ (이미선 「천사들의 눈물 – 베이비박스의 천사들」) 2007년 봄, 관악구 난곡동 주사랑공동체교회의 대문 앞에 갓 태어난 아이가 수건에 돌돌 말린 채 버려져 있었다. 여전히 냉기를 머금은 날씨로 인해 아기의 몸은 보랏빛을 띠고 있었다. 긴급히 응급조치를 펼쳐 아기의 목숨을 구한 이종락목사는 버려진 아이를 보호할 수 있는 베이비박스를 연구하게 된다.아기를 베이비박스에 놓아두면 벨이 자동으로 건물에 울리게 하였다. 또한 아이의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박스에 보온이 가능하도록 하였다.베이비 박스는 2009년 설치되어, 2010년 3월에 첫 아이가 베이비 박스를 통해 들어왔다. 베이비 박스 아동은 2011년에 36명, 2012년 76명, 2013년에 252명으로 급등하여, 2015년 9월 기준으로 총806명에 이르고 있다.베이비박스는 현재 베이비
눈물을 닦아주는 이는 기댈 수 있는 나무와 같다. 그를 통해 호흡하고 힘을 얻고 삶에 대한 믿음을 부여잡는다. 고단과 슬픔에 가위 눌릴 때, 그가 눈동자처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에 위로가 된다. 그렇게 우리는 위로를 돛 삼아, 두려움의 파도를 해쳐나간다.제 13회 “서울국제사랑영화제”가 위로를 주제로 하여, 10일 이화여자대학교 ECC 삼성 홀에서 드롭박스상영으로 개막하였다.기댈 곳 없는 이들을 상징하는 작은 새를 여러 사람이 어깨동무하며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영화제 포스터는 “서울국제사랑영화제”가 보호받고 위로해주는 세상을 꿈꾸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영화제는 ‘아카페초이스’, ‘미션 초이스’, ‘스페셜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또한 국제단편경쟁으로 접수된 400여 편의 단편들 중 예심을 통과한 20여 편의 작품들이 소개된다.‘아카페초이스’는 위로와 공감의 시선을 담고 있는 영화들을 포함하였다. 프랑스에서 이방인 삶을 살아가는 엄마가 딸들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인 파티마, 절망의 유혹에 대한 반의식적 저항을 성경적 코드로 그린 더 퍼스트, 더 라스트, 불량청소년들이 다니는 대안학교의 일상을 담은 올해 선댄스 영화제 미국 다큐멘터리 베리테 부문 심사위원 수상작 배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파국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조직위원장 선출 방식등 정관 개정과 관련, 부산시와 부산국제영화제측이 여전히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1996년 시작되어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발돋움한 BIFF가 양측의 힘겨루기로 무산위기에 놓여 있다.‘부산국제영화제지키기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측은 조직위원장과 임원을 총회에서 선출하자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부산시측은 시장이 조직위원장을 임명하거나 추천위원회를 구성하여 시장이 추천인을 임명하자고 맞서고 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은 김동호 전 집행위원장을 임시 조직위원장으로 추대하여 영화제를 치르자는 중재안을 제안해 놓고 있다. ◆BIFF사태BIFF사태는 영화제의 자율성과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부산시와 BIFF측의 대립에서 비롯되었다. 부산국제영화제 사태의 발단은 2014년 세월호 참사현장의 구조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다이빙 벨 상영 논란이다. 당시 부산시장이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에 포함된 다이빙벨 초청을 취소하라고 요구하였지만, BIFF측은 이 영화를 두 차례 상영하였다.이듬해 부산시장은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에게 사퇴권고를 하였다. 영화단체들은 이 전 집행위원장에 대한 사퇴 권고가 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결국 퇴행한다는 것이다.2차 세계대전 이후 50년대 초반까지 프랑스 영화가 그러하였다. 영화 종사자들은 게을렀다. 창작 시나리오 없이 유명 문학작품을 각색하기 바빴고 창의성보다 오락성에 매달렸다. 스타를 동원하여 생각하게 하는 영화보다 보기 좋은 영화를 만들었다.오락성을 추구하는 영화들은 관객들을 수동적인 존재로 인식하였다. 시각적으로 감각적으로 정보를 흡수하는 미숙한 이들로 간주한 것이다.이러한 방식의 영화들이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제품이 쏟아져 나오듯이 생산되었다.원인은 전후 할리우드 영화의 과대한 수입이었다. 생존에 위기를 느낀 프랑스영화제작자들은 수입쿼터제를 만들고 상업성을 추구하는 표준화된 영화를 찍어낸 것이다. 하지만 ‘쉬운 주제를 즐기는 단순한’ 대중으로 취급되었던 관객들은 관습화된 영화에 거리를 두기 시작하였다. 관객들은 ‘영화는 허구한 날 왜 저럴까?’라며 기존의 영화에 반감을 드러낸 것이다. 이는 습관과 일상화라는 순응주의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영화에 대한 변화의 조짐이 탈순응주의의 힘으로 형성되기 시작 한 것이다.◆새로운 물결의 전조 : 자유롭고 건강한 여성, BB 그리고 ‘카메라-만년필 이
철원의 한 고등학교의 평교사인 아버지의 정년 퇴임 일에, 춘천에 사는 어머니, 큰 아들 부부,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사택에 모인다.아버지는 가족 앞에 이혼을 선언한다. 폭설로 교통이 묶여 가족은 2박 3일간 불가피한 동거를 한다. 가족들은 황당함 가운데, 각자의 속내를 드러내며 감정의 골을 깊이 판다.관객을 빨려 들어가게 하는 영화와 관객과 다소 거리를 두는 영화 중, 어떠한 영화가 좋은 영화라 할 수 있을까? 영화 철원기행은 거리두기를 하는 영화라 할 수 있다.이야기는 기승전결의 명확한 구분이 없다. 클라이맥스도 없고, 이야기의 맺음도 열려 있다. 즉 이 영화는 관객이 하나의 주된 줄기를 잡고 이야기를 따라 가도록 하는 친절한 구조의 영화들과 질감이 다르다.주인공들의 행동이나 이야기의 인과관계도 촘촘히 짜여 있지 않고, 다소 개연성이 부족하게 연결되기도 한다.이러한 영화의 구조는 관객이 영화 속으로 빠져드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 기존의 영화들이 관객의 집중을 위해 씬의 이음매를 부드럽게 연결하는 것에 반해, 철원기행은 에피소드적인 씬들이 투박하게 굴곡을 두고 이어진다.그렇다고 이러한 영화의 구성을 두고 불평하기엔 이르다. 영화와 관객간의 거리두기는 어쩌
#1.찬바람과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씨에 외투도 없이 재킷만으로 거리를 배회하는 포크가수 르윈, 아무도 들어주지도 않는 음악과 작별하고 따뜻하게 배를 채워야하는가 아니면 순수와 꿈을 위해 가수로 자신의 길을 계속 걸어야하는가.인사이드 르윈#2. 1950년대 할리우드 영화사인 캐피틀 픽쳐스의 대표로, 쏟아지는 사건과 스캔들을 처리하느라 밤낮없이 일을 하는 에디 메닉스(조슈 브롤린). 생활의 여유와 안락함을 보장하는 핵폭탄 제조사인 록히드사의 스카웃 제의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지금까지 바쳐온 영화에 대한 열정을 지속할 것인가. 헤일 시저코엔 형제의 명성은 아마도 전작에 비해 변주가 더욱 깊어지고 넓어진다는 점일 것이다.그들은 3년 전 작품이었던 르윈 인사이드의 주제의식을 다시 꺼내들었다. 즉 헤일시저에도 존재와 존재해야하는 것과의 갈등이라는 철학적 명제를 제시한다. 하지만 전작과 동일한 관심사에 풍성함과 치밀한 깊이가 더해졌다. 풍성함과 깊이는 영화에 대한 그들의 헌사와 관련된다. 코엔 형제는 ‘봐라! 영화(예술)가 이렇게 눈부시지 않은가’ 라며 자신감 넘치게 캐피틀 픽쳐스의 작품들을 화면에 수놓는다. 조지 클로니의 로마시대의 서사극 ‘헤일시저’, 스칼렛 요한
사랑하면 엔돌핀이 나오고 싸우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 엔돌핀은 면역력을 높이고 아드레날린은 분노를 끌어올린다. 그러므로 건강하게 살려면 사랑하라고 한다.육체적 건강뿐 아니라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치유도 사랑에 빚지고 있다. 자존감과 자신감도 관계 회복과 사랑의 결과이다.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상처로 마음의 살이 도려내진 조제(이케와키 치즈루)의 사랑과 성장 이야기이다.*(이하 스포일러 있습니다)*◆ 조제 새벽, 할머니가 끄는 큰 유모차가 새벽을 헤쳐간다. 유모차는 늘 담요로 덮여 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해 한다.유모차엔 다리가 불편한 조제가 실려 있다. 그녀는 남에게 내어 보이기 창피한 수치라고 할머니는 생각한다. 조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이다.마음에 상처를 예리하게 내는 이는 다름 아닌 가족이다. 결점 많은 아이, 내세울 것 없는 아이는 부모에게 부끄러운 짐이 된다. 부모의 위신을 위해 부족한 아이를 숨기고, 아이에게 무관심과 언어폭력을 휘두른다.조제는 호신용 권총을 구입하고자 한다. 칼로 도려낸 듯한 상한 마음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불신과 분노를 품게 한다.결점 많은 아이의 잠재의식에는 거절의 상처가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