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무상보육과 야권의 무상급식 지키기의 대립구도로, 여권진영과 야권진영이 해답 없는 정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고 있다.
일반적으로 한 발자국 물러서서 여당의 대리전을 참관하는 입장이었던 청와대까지 누리과정을 둘러싼 진영싸움에 본격 뛰어들었다. 9일 안종범 경제수석은 누리과정은 법적 의무사항인 만큼 지방자치단체와 지방교육청이 반드시 예산편성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의 박완주 원내대변인은 10일 국회 정론관에서 “아이들 식판을 뺏는 대열에 당·정·청이 한꺼번에 나서며 비정한 정권의 민낯을 드러낸 것”이라며 여권진영을 강력히 비판하였다.
여야가 모두 자신들의 대표 정책 브랜드를 지키기 위해 거대한 정쟁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 버린 형국이다.
진보진영의 시도교육청은 내년 초 2~3개월은 교육청이 어린이집 예산을 편성하되, 나머지 예산은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3월 이후 중앙정부와 광역지자체가 교육청에 누리과정예산을 지원할 가능성은 낮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무상 급식재원 일부를 어린이집 누리과정예산으로 돌리라는 입장이다. 대통령공약인 누리과정을 관철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보진영의 교육감들이 무상급식예산을 줄여 누리과정을 지원할 가능성은 더 낮다.
이러다가는 내년에 급식도 보육도 이루어지 못하는 복지대란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진영대립은 재원 부족으로부터 비롯
무상복지 이슈가 진영대립으로 비화한 근본적 이유는 복지수요에 충당할 재원이 부족한 탓이다.
지난달 7일 전국 17개 시도교육감이 “내년도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겠다.”며 누리과정은 중앙정부의 책임이라고 주장한 것은 누리과정예산이 2012년 1조 5051억원에서 내년 3조 9184억원으로 대폭 상승한 것에 기인한다.
따라서 시도교육청은 내년도에 시도교육청 관할인 유치원의 누리과정은 교육청이 담당하고 보건복지부 관할인 어린이집의 누리과정 예산 편성은 교육청이 편성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반면 중앙정부는 지방교육청이 지방교육재정교부금과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으로 누리과정 보육비를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새누리당 김무성대표, 최경환 경제부총리, 그리고 황우여 교육부장관등은 무상보육재원이 부족하다면 무상급식재원으로 누리과정보육비를 충당하라는 취지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논란에 기름을 부은 이는 새누리당 소속 홍준표 경남도 지사이다. 홍지사는 지난 3일 지자체 예산 부족으로 도정부가 교육청에 지원하는 무상 급식 예산 320여억원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무상 급식비는 전국평균 지자체 40% 교육청 60%씩 부담하고 있다.
이러자 진보진영의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은 5일 누리과정 소요액 1조460억원 가운데 6,405억원은 예산부족으로 편성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누리과정은 국가에서 예산을 지원해주지 못하면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정부는 세수부족으로 복지수요에 충분한 지방재정교부금을 지방교육청에 이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누리과정 예산은 누가 부담해야하나?
현행법에서 누리과정 예산을 누가 부담해야 할까? 영유아보육법과 시행령은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영유아보육법(34조 3항)과 시행령(23조 1항) 내용이 충돌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우선 상위법인 영유아 보육법 34조 3항은 “무상보육 실시에 드는 비용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거나 보조하여야 한다” 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하위법인 영유아보육법 시행령 23조 1항은 “영유아 무상보육 실시에 드는 비용은 예산의 범위에서 부담하되,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따른 보통교부금으로 부담한다.”며 상위법과 다른 부담 주체를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상위법과 하위법의 충돌 논란과 관련,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지방교육교부금으로 보육에 충당하도록 하는 시행령은 법위반이라는 해석이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교육에 쓰이기 위해 정부가 지방에 이전되는 금액이므로, 보육으로 전용하는 것은 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은 교부금의 사용목적을 교육이라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 큰 형님 대학등록금 대느라 막내 동생 어린이 집 못 가다니
무상복지 이슈가 정치적 논란이 된 것은 정부가 돈이 부족하기 때문이지만, 정부의 내년도 예산편성에도 여야 정쟁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정부는 대폭 증가한 보육비용 증가에 대해 유아 및 초중등교육부문의 예산을 증액시키는 대신, 고등교육분야의 대학생 반값 등록금에 예산의 상당액을 배정하였다.
2015년 교육 분야 예산안은 유아 및 초중등교육, 고등교육, 평생 직업교육, 교육일반으로 구성된다. 이 중 고등교육 증가액이 전년도 대비 증감률(21.2%)이 가장 높아, 약 1조 9천억 원이다. 유아분야는 1.0%증가하여 4천290억 원 증가에 머물렀다.
고등교육부문에 이렇게 대폭 증가한 이유는 대학생 반값등록금 정책 완성과 대학경쟁력 강화등에 예산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유아 및 초중등교육 부문의 예산이 증가하지 않은 것은 누리과정에 소요되는 예산 전액이 2015년 지방교육청으로 이양되기로 예정된데 기인 한다
예산전체를 검토해보면, 내년도 예산에서 증가액이 높은 분야는 단연 보건 복지 고용이다. 증가액 1위인 공적연금은 전년 대비 3조2천억 증가하였고, 그 뒤를 이어 노인청소년 분야가 2조4천억, 노동 분야가 1조 증가하였다.
등록금증가액은 전체 예산에서 노인 청소년 부문에 이어 3위이다. 노인청소년 부문은 기초연금 전면시행으로 수급자수가 17만 명이 추가되었고, 장애인 연금도 수급대상을 중증장애인의 70%까지 확대하였다.
따라서 예산배분을 기초연금, 대통령 공약인 반값등록금에 우선 배분하다보니, 정부부담 보육비를 줄이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결국 큰형님 대학 등록금 대느라 막내 동생이 어린이 집 가기 힘들게 생겼다.
대학생들은 학비를 벌기위해 공부대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고, 현재 대학생들의 부모인 베이비 세대들은 자녀 등록금을 대느라 노후대책이 막막하다는 얘기가 들린다. 정부는 대통령 공약인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육비를 늘리지 않는 대신 등록금을 늘리는 예산을 편성한 것이다.
정부보조로 막내 동생은 어린이집에도 가고 큰형님은 대학도 다닐 수 있다면 좋으련만, 현재의 재정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대학생들이 과잉 공급되어 대학생청년실업은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어, 대학의 구조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하지만 이러한 대학 구조 조정 등은 장기간 소요되는 문제이고, 정치권은 이미 공약을 뱉어 놓은 상태이니 다시 거두기도 민망하다.
◆ 재원 조달은 어떻게?
복지재원과 관련한 논의의 출발점은 복지정책을 복지수요 모두를 충족시키기 위해 증세를 하여 고세금 고복지의 형태로 갈 것인가, 아니면 현재의 저세금 저복지의 형태로 유지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러한 논의가 토론의 장에서 활발히 이루어야 할 시점이다. 이미 추진되고 있는 복지정책이라도 차질 없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복지정책의 범위와 그 재원조달에 대한 공개적인 토론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당면해 있는 문제인 반값 등록금, 보육비, 급식비 수요를 충족시키 위해서 재원을 어떻게 조달해야 할까?
우선 정부가 올해 세법개정으로 제출한 법안 중 배당소득증대세제의 도입 철회를 들 수 있다.
원천징수세율을 14%에서 9%로 인하하고 종합과세 대상자는 선택적 분리과세(25%)를 허용하는 내용인 배당소득증대세제의 도입은 세수감소를 초래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38% 최고 세율이 적용되는 배당소득자 중 상위 1%가 전체 배당의 72.1%를 수취하게 되는 상황에서, 이 법안으로 인해 이들의 배당소득으로 인한 부담세율이 38%에서 25%로 줄기 때문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배당소득증대세제 도입으로 세수가 2016~2018년간 매년 약 224억 원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그러므로 고소득자 1%에게 대부분의 세제혜택이 부과되는 이 법안의 도입이 철회되면 세수가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덧붙여 소득세 직접세 증세를 고려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개인은 OECD평균에 비해 조세 부담률이 낮은 편으로 파악되고 있다.
동국대 김낙년 교수팀이 최근 국세청 납세자료를 활용해 발표한 ‘한국의 고소득층’이라는 논문에 따르면 2012년 말 기준 한국의 4인 가족 기준 근로소득에서 조세부담이 차지하는 비중은 저소득층은 16.6%, 고소득층은 23.7%이다. OECD 평균은 각각 6.5%, 38.6%다. 우리나라 고소득층이 선진국의 고소득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세금을 덜 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득세 증세 여력은 충분한 편이다.
또한 법인세의 실효 세율 증가를 검토할 수 있다.
법인세는 명목세율만 보면 OECD국가에 비해 낮지가 않다. 우리나라 법인세 최고세율은 22%로 OECD 평균(23.5%)보다 다소 낮은 편이다. 정부는 우리나라 법인세가 다른 국가들과 비교할 때 추가 인상의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명목세율 인상에는 명분이 약한 편이다.
하지만 실효세율로 따지고 들어가면 얘기는 달라진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30대 대기업이 실제로 납부한 법인세 비율은 최저한세율인 17%에도 미치지 못하는 15%에 불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기준으로,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63개 집단인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까지 범위를 넓혀도 실효세율은 15.8%에 그쳤다.
실효세율은 공제 감면을 모두 고려한 후의 총부담세액을 과표로 나눈 세율이다.
실효세율을 계산하기 위해 우선 과표에 법인세 최고세율이 매겨진다. 이 세율의 한계세율이 22%이다.
하지만 이 산출세액에서 다시 공제감면세액이 차감된다. 여기에 가산세가 더해져 총부담세액이 결정된다.
여기서 다시 최저한세율을 계산한다. 법인이 공제 감면을 받을 경우 최소한 일정세액을 내야 할 최저한세율과 감면 후 세액(최저한세 적용 감면세액만 차감)을 비교하여 둘 중 큰 쪽이 법인이 부담하는 세액이다.
마지막으로 최저한세에서 최저한세 배제 감면세액을 차감한 금액이 최종 법인이 부담하는 세액이다. 현재 최저한세율은 감면 전 과표가 1000억초과 법인은 17%, 최저한세율이 100억 초과 ~ 1000억 이하 법인의 경우 최저한세율이 12%이며, 중소기업은 7%이다.
그런데 30대 대기업의 실효세율은 지나친 공제 감면을 방지하기 위한 최저한세율인 17%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최저한세율에서 최저한세 배제 공제감면세액이 차감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30대 대기업의 법인세 공제감면 총액도 해마다 증가하면서 지난해 사상 최고인 4조310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체 법인세 공제감면액의 46.2%에 해당한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실효세율을 외국의 법인세 실효세율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실효세율이 매우 낮은 편이다. 미국의 법인세 실효세율이 26%, 독일 29.55%, 영국 28%이며, 특히 일본의 경우 법인세 실효세율이 34.62%에 이른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성호 의원은 지난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삼성전자의 법인세 실효세율이 16.3%로 경쟁사인 미국 애플의 25.2%보다 크게 낮다”며 “대기업의 최저한세율을 1~2% 포인트 인상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자동차의 법인세 실효세율도 15.8%로 일본 토요타의 39.3%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정 의원은 또한 비과세·감면도 함께 축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인들이 법인세와 배당 그리고 법정준비금을 차감한 유보액을 쌓아두고, 이 금액을 설비투자 대신 비사업용 토지나 관계기업 주식에 투자하는 상황에서, 최저한세 인상은 법인의 투자를 저해하는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일부에 특혜가 되는 세법도입을 철회하고, 증세 여력이 있는 고소득층의 소득세의 세율인상, 그리고 법인세 중 대기업의 최저한세율의 인상이 이루어진다면, 정부는 거시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고 충분히 현재 진행되고 있는 복지수요에 대처 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