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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Jazz ① ] ‘그 사람 쿨 해!’ : 쿨 재즈를 통해 본 쿨 한 사람이란?

You looks are laughable, un-photographable
Yet, you’re my favorite work of art.
당신의 모습은 별 볼 일 없고, 사진에 멋지게 나오지 않지만
당신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예술 작품이지요


Stay little valentine, stay!
Each day is Valentine’s Day.
내 곁에 있어줘요, 작은 발렌타인
매일매일이 발렌타인 데이지요


https://youtu.be/jvXywhJpOKs


사랑에 빠지면 이런 감정일까요? 당신이 비록 그리스 조각 같은 용모는 아닐지라도, 헤어스타일은 바꾸지 말라고 애원합니다. 지금 그대로의 당신이 바로 미술 작품이라고 매일 매일 고백합니다.


‘My funny valentine’은 중의적인 느낌을 줍니다. 곡의 가사는 열정적인 사랑을 노래하는데, 리듬과 선율은 느리고 우울한 단조음계입니다.  심지어 곧 헤어질 것 같은 슬픈 감정을 들게 합니다. 그래서인지 계속 만나겠다는 건지, 사랑하지만 무슨 사연이 있어 떠난다는 건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


이 곡은 1937년 초연된 뮤지컬 ‘Babes in Arms’에 나오는 노래로, 영화화된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을 작곡한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dgers)의 작품입니다. ‘에델바이스’의 느린 감성이 이 노래에도 묻어나오는 듯합니다.


여러 뮤지션들이 이 곡을 노래했는데, 특히 쳇 베이커(Chet Baker, 1929~1988) 버전이 ‘My funny valentine’의 대표곡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실제 발렌타인 데이에 라디오 DJ들이 주로 틀어주는 곡도 쳇 베이커가 부른 곡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쳇 베이커 버전은 이 곡의 중의성을 위로와 치유로 수렴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의 우수에 찬 제임스 딘의 외모에, 눈물을 가슴 속으로 삼키는 듯한 슬픈 얼굴, 연민을 자아내는 목소리는 열정적인 사랑을  서늘하고 건조하게 표현합니다.  사랑은 열정과 지성이 조화된 결정체라는 점을 쳇 베이커는 표현하고자 한 듯합니다.



◆ 쿨은 위로


쳇 베이커는 ‘쿨’재즈 뮤지션에 속하는 트럼펫 연주자 겸 보컬리스트입니다. 그러므로 쳇 베이커의 감성은 쿨 재즈의 표현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색적이며 감성적인 재즈인 쿨은 1950년 대 초,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한 서부 해안지역, 웨스트 코스트에서 널리 연주되었습니다. 


‘쿨’은 위로입니다. 


격렬하고 빠른 비밥 스타일에 대응하여 차분하고 여유로움을 강조합니다. 열정적인 웅변가라기보다 고민하는 사색가처럼 사색적이고 우아한 음을 표현합니다.


이를테면 비밥은 찰리 파커의 힘찬 색소폰의 음색에 가슴 뛰게 한다면, 쿨은 쳇 베이커의 유연하고 서정적인 음색에 젖어들게 합니다.  


이런 우아한 멜랑콜리는 상처를 덧내기보다 외려 지친 가슴을 위로합니다. 지성적이면서 감성적인 그리고 유연한  쿨의 음색은 듣는 이의 아픔과 슬픔을 멜랑콜리하게 감싸줍니다.


쳇 베이커의  ‘My funny valentine’가 라디오 팝 프로그램에서 곧 잘 흘러나오는 것도 이런 연유일 것입니다.



◆쿨은 절제


쿨의 표현 방식은 절제입니다.


과한 비브라토도 없는 쿨은 코드와 코드사이를 부드럽게 리듬을 타며 연결해주는 선율을 선사합니다. 열변을 토하는 수다스러움보다 담백한 표현을 강조하는 것이지요.


이런 절제된 태도는 신뢰를 높인다는 지적입니다. 쿨은 과도한 노출보다 은근한 드러냄으로, 수줍은 듯이 엷은 미소를 지으며 귀를 기울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핵심을 찌르는 말을 하는 경제적 어법과 같다 할 수 있습니다. 



◆ 쿨은 도전


쿨 연주자들은 익숙한 기준에 도전합니다.


쿨재즈의 원조는 흑인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 1926~1991)입니다. 쿨재즈는 마일즈 데이비스 9중주단이 발표한 앨범 ‘쿨의 탄생 (Birth of Cool)’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마일즈는 무엇이 좋은 음악인지를 판단하는 척도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는 복잡한 코드와 현란한 코드 체인지가 뛰어난 음악성을 대표한다는 관행에 도전하여, 최소한의 절제된 코드가 재즈의 미덕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표준을 제시합니다. 



◆쿨은 새로움


쿨은 새로움입니다.


쿨재즈의 또 다른 거장은 웨스트코스트 재즈의 데이브 브루벡 (Dave Brubeck, 1920~2012)입니다. 그는 1954년 타임지 표지에 소개 될 정도로 대표적 재즈인이었습니다.  브루벡 콰르텟은 피아노, 알토 색소폰, 베이스, 드럼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의 귀에 익숙한 곡 <테이크 파이브 Take Five>는 혁신적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통재즈의 2박자의 테두리 대신 5박자의 기본에 당김음을 사용하였습니다. 이 곡은 4분의 5박자의 노래도 히트곡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지요.


"Take Five" by Dave Brubeck

https://youtu.be/vmDDOFXSgAs     


이러한 박자는 고전음악이 재즈에 미친 영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전음악이 재즈음악에 미친 현상을 제3의 물결 (the third stream) 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재즈의 본래의 감각에 클래식의 장점을 접목하는 창의적 시도는 재즈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쿨은 조화


쿨은 또한 조화입니다.


마일즈 데이비스 9중주단엔  쿨 재즈의 대표 인물인  제리 멀리건이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혁신적 뮤지션이었습니다. 그리고 혁신의 방향은  조화였습니다.


멀리건은 마일즈 데이비스 9중주단에서 나와  독자적인 4중주단 ‘제리 멀리건 콰르텟’을 결성하였는데, 밴드 악기의 구성이 혁신적입니다. 


기존의 악기 구성에서 피아노는 밴드의 핵심이었습니다. 선율악기로도 리듬악기로도 이용되었던 피아노는 화음을 제시하면서 곡의 틀을 이끄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멀리건 콰르텟엔 피아노가 사라졌습니다. 멀리건은 베이스와 드럼 그리고 멀리건의 바리톤 섹소폰 및 쳇 베이커의 트럼프로 콰르텟을 구성하였습니다. 바리톤 섹스폰이 피아노의 울림을 대신한 것이지요.  ‘마이 퍼니 발렌타인’은 새로운 악기 구성으로 연주된 곡으로, 멀리건 콰르텟의 최고 히트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멀리건이 피아노 편성을 과감히 배제한 이유는 피아노가 밴드에서 독보적이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피아노가 음악의 흐름을 잡아주어 안정된 풍요로움을 유도하지만,  반대로 다른 악기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빈곤을 노출시켰습니다. 


멀리건은 피아노외의 악기들이 피아노의 화음에 갇혀 보다 자유로운 연주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피아노 없는 음악은 산만해질 수 있지만  악기들의 자유로운 표현이 콰르텟의 음악을 더욱 풍부하게 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습니다. 



◆ 쿨 한 사람이란?


우리는 ‘그 사람 쿨 해!’라는 말을 곧 잘 듣습니다. 그럼 쿨 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이에 대한 답을 쿨재즈가 담고 있는 개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블루지한 감성의 쿨재즈는 절제를 통해 슬픔과 외로움을 달래주며, 쉼 없는 융합을 통해 변화를 꾀하며, 독단보다 구성원들의 개성을 살려 조화를 이루려 합니다.


이처럼 절제하며 상대를 위로하는 인물, 익숙한 표준에 도전하는 인물, 새로움을 빚어내는 인물, 그리고 공동체의 조화의 미덕을 소중히 하는 인물이  ‘쿨’하다고  쿨재즈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쿨 한 행동은 거창하고 위대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거리의  자선냄비에 커피한잔 값을 넣어두는 손길이 바로 쿨 한 행동의 시작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