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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선진화법] 국회선진화법, 타협의 정치문화 만들 수 있나?

정세균 국회의장이 1일 여야 의원들에게  국회선진화법 개정을 촉구한 것은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입법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정의장은 정기국회 개회사에서 “양당체제를 상정하고 설계된 선진화법이 다당체제의 정치적 역동성 발휘를 어렵게 하고 있다.”며 국회선진화법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특히 정의장은 국회선진화법이 초래하는 정치적 교착상태에 대한 문제점을  언급하면서, 안건조정제도가 다수결의 원리를 훼손하며  예산안 자동부의제도가 의결 기능의 부실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정의장은  “정부여당과 국회의장의 담합과 전횡을 방지하기 위해 직권상정 요건을 엄격히 제한한 일도 정치적 교착상태를 풀어갈 리더십 형성에 장애가 되고 있다.”며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 완화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결국 정의장의 선진화법  개정 제안 배경은 국회선진화법의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입법교착의 타개와 국회의 입법 생산성 제고에 있다고 해석 할 수 있다.



입법교착

입법교착은 정책의 현상유지를 말한다.  정책의 변화가 없어 정치 환경의 변화와 활기를 상실한 상태를 말한다.  이는 의회와 대통령이 정책 개선의 타협에 이르지 못한 결과이다.  


입법교착은 정책의 변화 발전을 가로막는 토양에서 자라난다는 분석이 있다.  당파적 양극화, 여소야대의 분점정부라는 정치여건에서 입법의 정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분점정부는,  대통령의 소속당과 다수당이 일치하여 의회와 행정부의 정책연계가 용이한 단점정부와 달리, 행정부와 다수당간의 입법생산에 대한 협력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정책은 입법으로 구현되므로, 행정부의 정책 기능은 사실상 마비가 된다.


또 정당양극화도 입법교착을 초래하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정당내의 이념적 동질성이 높고 정당간의 이념적 거리감이 클 경우, 입법에 대한 타협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의안신속처리제, 3/5 초댜수제로 사실상 무용지물

국회선진화법은 입법교착을 제도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의안 신속처리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이 제도는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요건 강화로 비롯된  입법 지연을 막아  국회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선진화법은 의장의 직권상정요건(안건 심사기간 지정) 사유를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 △ 교섭단체 간 합의로 제한하고 있다.


입법지연을 막기 위한 장치로 도입된 의안 신속처리제도(fast track)는 안건의 자동회부를 가능하게 한다.  입법과정의 각 단계별로 법안심의가 시한을 지나게 되면, 안건은  다음단계로 자동 회부 혹은 부의 된다.


문제는 의안 신속처리제도의 지정이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것이다. 상임위 재적 의원의 3/5이상의 찬성을 지정 요건으로 하고 있어서이다.


국회 총 의석수 300석의 3/5은 180석이다. 상임위의 정당별 위원 분포가 전체 국회 의석비율과 유사하므로, 여당인 민주당이 단독으로 상임위의 쟁점 법안을  신속처리제도로 지정하기는 불가능하다.  20대 국회에서 제1당인 민주당은 총 의석수 300석에서 과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120석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당은 20석의 바른정당, 40석의 국민의당, 6석의 정의당등의 지원을 받아야 신속처리제도의 지정요건을 갖출 수 있다. 


또 신속처리제도로 지정되어도 본회의에 상정되기 위한 기간이 지나치게 길다는 점도 신속처리제도의 효용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상임위원회는 특정 법안을 신속처리 대상 안건으로 지정한 후, 180일내에 법안을 처리해야한다.  법안처리가  법안 심사 기한을 지나게 되면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로 자동회부 된 것으로 간주된다. 


법제사법위원회는 90일내에 회부된 안건의 체계 자구심사를 마쳐야 한다. 법사위가 그 기간 내에 안건을 심사하지 못하면,  안건은 자동으로 본회의에 부의된다. 


본회의에 회부된 신속처리대상안건은 회부된 후 60일 이내에 상정되어야 하고, 60일 이내에 상정되지 않으면 본회의에 자동 상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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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의안신속처리제로 지정된 안건은 최대 330일(상임위 180일+법사위 90일+본회의 60일) 후에 자동으로 본회의에 상정될 수 있다.


이처럼 의안신속처리제는 20대 국회에서 실질적인 효용성을 상실한 상태이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강화로 인한 입법정체를 정당간의 타협으로 극복한다는 이 제도는 결국 입법 생산에 아무런 구실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안건조정위원회, 다수결이라는 대의민주주의의 원칙을 훼손


국회선진화법은 입법지연을 해소하기 위해 신속처리제도에 덧붙여 일반안건으로 처리되는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이 제도는 안건조정위원회의 운영이다.  하지만 이 제도의 효용성은 야당의 협조를 전제로 하고 있다.


안건조정위원회는 상임위 위원 1/3의 요구로 최대 90일간 활동할 수 있다. 안건 조정위원회는 여야 동수 6인으로 구성되는데, 안건조정위원회 2/3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안건이 표결 처리된다.


 문제는 조정위원회가 입법지연을 막기 위한 제도로 기능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위원회는 여야동수로 구성되어, 여야의 대립이 격화되면 쟁점법안의 의결 기준인 2/3 충족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만약 안건이 2/3의 찬성을 받지 못하거나 위원회에서 부결되면, 소위원회로 다시 회부된다. 이 경우 상임위 위원장이 야당 소속 위원이면, 의안은 심사되지 못하고 계류되거나 폐기 처분될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 안건이 안건조정위원회와 위원회 전체회의를 거쳐 법사위로 회부되어도, 법안은  본회의 부의를 위한 3/5의 요건에 부딪힌다.  법사위가 120일내에 심의를 마치지 못할 경우 상임위원회 위원장은 위원회 3/5이상의 찬성을 얻어 의장에게 본회의 부의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런데 위원회 3/5이상 찬성은 야당의 협조가 없는 한 현재 의석분포상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안건조정위원회는 야당의 협조를 절대적으로 요구하는 협치의 시험대로 기능할 뿐이다. 


안건조정위윈회가 소수독재를 정당화시키고, 다수결이라는 대의민주주의의 원칙을 훼손한다는 지적은 이런 이유에서  나온다



◆ 예산안 본회의 자동부의 제도, 부실 심사 초래

국회선진화법이 예산안의 원활한 통과를 위해 도입한 제도가 예산안 본회의 자동부의제도이다.


이 제도는 11월 30일 까지 예산결사위원회가 예산안 심사를, 기획재정위원회가 조세관련 법안의 심사를 마치지 못할 경우, 예산안 및 세입예산안 부수법률안은 12월 1일에 본회의에 자동부의 된 것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법정기한 내 예산안등의 신속한 처리 압박은 국회 본연의 역할을 약화시킨다는 비판이 있다. 기한에 쫓겨 심도 있는 예산안과 부수법안의 심의가 불가능하여 부실 심사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국회선진화법은  새로운 실험대에 올라

국회선진화법은 제도가 사람의 행위를 규정할 수 있다는 믿음에 터 잡고 있다. 국회의 운영제도의 변화가 궁극적으로 대결의 정치문화를 타협의 정치문화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회선진화법은 입법교착을 초래하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또 오히려  3/5 찬성 요건은 소수당의 협조 없이는 법안을 통과시키기 어려워, 소수의 독재를 정당화시킬 위험성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소수당의 지원이 없을 경우, 입법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법으로 국회를 선진화시키기보다  여야 대립의 문화 구조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결국 국회선진화법은 정치적 타협과 합의에 대한 압박이라는 선한 의도를 지니고 있지만, 현실정치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기능부전을 드러내고 있다.   국회선진화법으로 타협과 합의의 문화를 만들어 가자는 법안 도입 취지가 오히려 입법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제도의 변화가 사람의 행동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중대한 실험으로 여겨져 온 국회선진화법은  새로운 실험대에 올라 있다.